부천이라는 지명은 부평(富平)의 부(富)와 인천(仁川)의 천(川)을 조합한 이름이다.
1914년 일제의 ‘조선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부평군이 폐지되고 부천군이 탄생하였다.
신설된 부천군 내 면(面)도 조정되었는데 당시 부천군은 총 15개의 면을 관할했다.
현재 원미구 지역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과 옥산면 일대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신설된 오정면 일부와 석천면 및 옥산면을 통합한 계남면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원미동은 『호구총수(1789)』 부평부 옥산면(玉山面)의 6개 마을 중 조종리(曹宗里)에 속하였다.
조종리는 1914년 부천군 계남면(桂南面)에 속했다가, 1941년 부천군 소사읍 계남면에 속하였고, 1973년 부천시 승격 당시 원미‧춘의동에 속하였다.
원미구 지역은 1988년 구제 실시로 부천시가 중구/남구로 분구되자 중구(10개동)에 속하였다.
1993년 2월 부천시는 중구를 오정구와 원미구로 분구하였다.
또한 경인철도를 경계로 남쪽은 소사구, 북쪽은 원미구로 나누어 기존 남구 송내동 일부는 상동에, 소사2동의 일부는 원미구 소사동으로, 작동‧여월동(법정동) 일부를 원미구 춘의동으로 개편하였다.
개편 당시 원미구에 소속된 동은 남구 중동‧상동, 역곡1‧2동 및 송내동과 소사2동의 일부, 중구 심곡2‧3동과 심곡진동(현 심곡1동), 원미1‧2동, 춘의동‧도당동‧약대동이다.
1993년 5월 20일 원미구 중동을 중동과 중1동으로 나누고, 심곡1‧3동, 춘의동, 중동의 일부를 중2동으로, 상동을 상동‧상1동으로 나누었다.
2016년 책임동제 실시로 원미구가 폐지되었고, 2019년 광역동제 시행으로 약대동, 중1동‧중2동‧중3동‧중4동은 신중동으로, 도당동‧춘의동‧원미1동‧역곡1동‧역곡2동은 부천동으로, 원미2동‧심곡1동‧심곡2동‧심곡3동‧소사동은 심곡동으로, 중동‧상동은 중동으로, 상1동‧상2동‧상3동은 상동에 소속되었다.
2024년 1월 1일 구 설치 및 일반동 전환으로 원미구는 다시 설치되었고, 2024년 기준 20개 일반동(약대동‧도당동‧춘의동‧원미1동‧원미2동‧심곡1동‧심곡2동‧심곡3동‧중동‧중1동‧중2동‧중3동‧중4동‧상동‧상1동‧상2동‧상3동‧소사동‧역곡1동‧역곡2동)을 관할하고 있다.
원미구라는 명칭은 현 구청 소재지인 원미동에서 유래하였다.
‘원미’는 부천의 주산(主山) 중 하나인 원미산(167m)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원미산은 멀미산, 멀뫼산, 장대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으며 현 부천시 역곡동, 소사동, 춘의동, 원미동, 여월동(법정동) 일대에 걸쳐 있다.
현재 원미동은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는데,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원미산(遠眉山)으로, 『한국지명총람(1985)』에서는 멀뫼(미)를 바탕으로 둔대산(屯岱山), 멀미산, 원미산(遠眉山) 등으로 표기하였다.
원미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옛 부평부 관아에서 동쪽 멀리에 아름다운 산이 있어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여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으로 원미산(遠美山)으로 했다는 설이 있다.
또 1894년~1906년 사이 군사용 지도 제작을 위해 이곳을 측량하면서 임의로 원미산(遠眉山)이라 했다고 한다.
원미산의 이름 중 ‘멀미(멀뫼)’를 한자화했을 때 멀 원(遠)과 산이라는 이름의 미(眉, 美)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