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구 지도 영역
- 심곡1동
심곡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石川面/돌내면) 심곡리 지역이다. 심곡은 ‘깊은구지(深谷)’라는 뜻으로, 심곡본1동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연마을로 깊은 골짜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심곡1동은 1992년 중구 심곡3동에서 분동되어 심곡진동이 되었다가 199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미구 심곡1동으로 변경되었다. 심곡1동은 전형적인 주택가이며 대체로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부천역과 인접해 있어 부천시 내 교통의 요충지이다.
- 심곡2동
심곡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石川面/돌내면) 심곡리 지역이다. 심곡은 ‘깊은구지(深谷)’라는 뜻으로, 심곡본1동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연마을로 깊은 골짜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심곡2동은 1973년 부천시 승격 이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심곡2동은 부천역과 소신여객터미널이 입지하고 있어 이른 시기부터 부천 상업의 중심지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심곡3동
심곡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石川面/돌내면) 심곡리 지역이다. 심곡은 ‘깊은구지(深谷)’라는 뜻으로, 심곡본1동의 오래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연마을로 깊은 골짜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심곡3동은 1982년 심곡2동에서 분동되었고 199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미구 심곡3동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심곡3동은 원도심지역으로 부천역과 중동역 사이에 위치해 있다 부천시민운동장, 부천시민회관, 부천대학교, 부천상공회의소 등이 입지해 있다.
- 원미1동(遠美1洞)
원미동은 조선시대 부평부 옥산면(玉山面) 조종리(曹宗里)에 지역으로,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조종리(朝宗里)로 표기하고 있다. 조종리라는 마을 이름은 1973년 부천시가 탄생하고 원미동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집성촌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창녕 조씨가 종가를 이룬 마을’이라는 설과 조종리의 음운을 분석하여 ‘큰 마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조마루에서 비롯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 사용하는 원미동은 부천의 주산(主山) 중 하나인 원미산(167m)의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원미동은 부천시 승격 당시 원미‧춘의동에 속해 있다가 1977년 중앙동에 편입되었고, 1982년에 춘의동과 함께 원미동으로 분동되었다. 1985년 원미동이 원미1동과 원미2동으로 분동되었고, 원미1동은 1988년 중구로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원미1동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미1동은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등 구 가옥을 중심으로 한 주택 지역과 공장 지역으로 구분된다. 서쪽에는 원미구청이 입지해 있어 원미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동쪽 원미산 부근은 자연 녹지와 함께 원미공원과 시민소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된다. - 원미2동(遠美2洞)
원미동은 조선시대 부평부 옥산면(玉山面) 조종리(曹宗里) 지역으로,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조종리(朝宗里)로 표기하고 있다. 조종리라는 마을 이름은 1973년 부천시가 탄생하고 원미동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집성촌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창녕 조씨가 종가를 이룬 마을’이라는 설과 조종리의 음운을 분석하여 ‘큰 마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조마루에서 비롯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 사용하는 원미동은 부천의 주산(主山) 중 하나인 원미산(167m)의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원미동은 부천시 승격 당시 원미‧춘의동에 속해 있다가 1977년 중앙동에 편입되었고, 1982년에 춘의동과 함께 원미동으로 분동되었다. 1985년 원미동이 원미2동과 원미1동으로 분동되었고, 원미2동은 1988년 중구로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원미2동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미2동은 대형상가와 공장이 없는 순수한 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부흥로와 부천로 사이에 위치하고, 대중교통 수단도 잘 갖추어져 있어 주변 신도시나 부천역으로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 소사동
조선시대 부평군 옥산면(玉山面)에 소사리(素沙里) 지역으로, 1914년 부천군 계남면에 소속되었고 1931년에 소사읍으로 승격하였다. 1973년 7월 1일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소사동이 되었다. 소사라는 지명은 소사고개와 관련이 있는데, 소사는 좁다, 작다, 야트막하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소사는 작고 야트막한 고개로 근처의 좁고 낮은 고개인 여우고개, 소사고개, 사현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사는 크게 윗소사(윗소새)와 아랫소사(아랫소새)로 구분된다. 1988년 남구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인선 북쪽의 소사2동 지역이 소사동으로 변경되어 원미구 소사동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른다. 소사동은 전형적인 단독주택 밀집 지역이었으나, 현재 소규모 주택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소사동 가운데로 소사로가 관통하여 경인국도로 연결되고 멀뫼삼거리, 소명삼거리가 부일로와 부흥로로 연결되어 부천 도로망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서해선이 교차하는 소사역이 남부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 역곡1동(驛谷1洞)
역곡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옥산면(玉山面) 벌응절리(伐應節里) 지역이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벌응절리 내 역골(驛谷)이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역곡은 역원에 가까이 있던 계곡이라는 뜻으로 과거 농사시험장의 사택이 역관으로 사용되면서 역곡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역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을 찾기 어렵다. 1973년 역곡‧괴안동에 속했다가 1985년 역곡1동과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에 남구 역곡1동으로 편입되었다. 199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미구 역곡1동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른다. 역곡1동은 아파트, 주택, 빌라 등이 공존하는 주거구역으로 춘덕산을 중심으로 녹지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서울온수일반산업단지가 역곡1동과 서울시 온수동에 걸쳐 조성되었다, 오정구까지 종으로 관통하는 역곡로와 역곡고가로 소사구로 연결되어 부천 내 남북으로 이동이 수월하다. 또한 역곡역과 부일로를 통해 부천의 중서부 지역과 서울로의 진출입이 용이하다.
- 역곡2동(驛谷2洞)
역곡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옥산면(玉山面) 벌응절리(伐應節里) 지역이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벌응절리 내 역골(驛谷)이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역곡은 역원에 가까이 있던 계곡이라는 뜻으로 과거 농사시험장의 사택이 역관으로 사용되면서 역곡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역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을 찾기 어렵다. 1973년 역곡‧괴안동에 속했다가 1985년 역곡2동과 1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에 남구 역곡2동으로 편입되었다. 199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미구 역곡2동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른다. 역곡2동은 전형적인 주거 중심지역으로 현재 노후주택들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역곡역을 중심으로 상가가 조성되어 있고, 종합대학인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이 소재하고 있어 젊은 층의 거주율이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 춘의동(春衣洞)
춘의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옥산면(玉山面)의 당하리(堂下里) 지역으로 추정된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표절리(表節里)라 하였다. 표절리는 절개에 경의를 표한다는 설과 현 춘의 사거리 부근이 당아래에서는 ‘마을 밖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겉 표(表)를 썼다는 설이 있다. 1973년 부천시 승격 때 춘의동(春衣洞)으로 변경되어 원미‧춘의동에 속하였다. 1988년에는 중구 춘의동에 속하였다가 1993년 원미구 춘의동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른다. 춘의동은 춘의산 아래의 동네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족보나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意 또는 宜로 표기하고 있는데, 현재 춘의동은 춘의동(春衣洞)으로 표기하고 있다.
춘의동은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주거와 공업시설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면적 중 50% 정도가 그린벨트인 춘의동은 자연녹지와 함께 부천식물원, 무릉도원수목원과 부천시자연생태공원 같은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춘의동은 부천의 주요 도로인 길주로와 부천로 및 소사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며, 춘의역, 부천종합운동장역, 까치울역이 있어 교통이 원활하다. - 도당동(陶唐洞)
도당동은 조선시대 상오정면 도당리(都堂里) 지역이었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도당리(陶塘里)로 표기하고 있다. 도당은 예전에 춘의산 서쪽에 있던 나무에 제사를 지낸 도당나무에서 유래한다는 설, 도당을 ‘우물가에 막아 놓은 둑’으로 해석하거나, 질그릇 도(陶)와 당나라 당(唐)의 합성으로 질그릇을 구웠던 곳이라는 견해 등이 제시되고 있다. 1914년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오정면 도당리가 되었다. 도당동은 1973년 부천시 승격 당시 김포군 오정면에 편입되었다가 1975년 10월 부천시로 복귀하여 도당리, 약대리, 내리, 삼정리와 함께 신흥동에 편입되었다. 1988년 중구 신흥1동에 속하였다가 1990년 신흥1동에서 도당동이 분동되었고, 1993년 중구 도당동에서 원미구 도당동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른다. 도당동은 주거지과 공업지역이 함께 분포하고 있고, 동쪽에는 춘의산이 위치하고 있다. 춘의산에는 백만송이장미공원, 도당근린공원 등이 조성되어있고, 백만송이 장미축제와 도당산 벚꽃축제 등을 개최하고 있다. 2006년 부천대우테크노파크가 준공되어 이곳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 약대동(若大洞)
약대동은 원미구에 속한 행정동으로 조선시대 부평군 삼오정면 약대리 지역이었다. 약대동은 약대골, 약댓말, 약촌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자 이름도 약대(藥垈, 藥臺, 略默, 路黙, 駱馱) 등 다양한 글자로 표기하고 있는 만큼 여러 유래가 전한다. ‘약대(藥垈, 藥臺)’가 산나물과 약초가 많이 나는 마을에서 약대말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 초식동물이 좋아하는 풀들이 자생하여 약대(駱馱, 낙타류)를 사육했다는 설, 이 지역에 약물터가 있어서 약대(藥垈, 藥臺)라고 하다가 음이 같은 약대(若大)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지지자료(1911)』에서는 내촌(현재의 내동)과 도당을 ‘안약대’라하고 약대와 삼정을 ‘밖약대’라 했다고 하여 이들을 포괄하는 지역의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
1914년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오정면 약대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자 김포군에 편입되었다가, 1975년에 부천시 신흥동에 속하게 되었다. 신흥동은 1982년 신흥1동과 신흥2동으로 분동되었는데, 1993년에 신흥1동이 약대동으로 명칭이 바뀌어 원미구 약대동으로 변경되었다. 약대동은 비교적 낙후된 가옥이 밀집한 구도심이었는데, 2002년 초반부터 재건축이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현재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 구‧신도심이 병존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약대동에는 부천테크노파크와 부천 로보파크가 들어서 있어 원미구 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중동(中洞)
중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중리(中里) 지역이다. 중리라는 이름은 여러 마을 중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부천군 계남면에 속하였고 1973년 중동으로 변경되었다. 1988년 남구 중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에 원미구 중동으로 변경되었고 일부 지역은 상동으로 편입되었다. 중동은 전형적인 주거지역으로 부천시민운동장과 부천 시민회관 등의 문화시설과 각종 근린공원이 다수 분포하여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인근에 초등학교 3개(부천서초, 중동초, 상지초)가 자리 잡아 교육 환경도 좋은 편이다. 상동‧송내동과 인접해 있으며 중동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 중1동(中1洞)
중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중리(中里) 지역이다. 중리라는 이름은 여러 마을 중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부천군 계남면에 속하였고 1973년 중동으로 변경되었다. 1988년 남구 중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에 원미구 중동으로 변경되었고, 같은 해 중동에서 중1동이 분동되었다. 1995년에 중1동에서 중3동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1동은 신도시 개발에 따라 생성된 동이기 때문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같은 주거시설이 밀집해 있다. 또한 부천시청과 우체국, 백화점, 대형마트, 종합병원 등 각종 행정 및 편의 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중1동은 부천 내 교통의 중심지이자 상권 중심지역으로 인구가 가장 집중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부천시청역과 신중동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 중2동
중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중리(中里) 지역이다. 중리라는 이름은 여러 마을 중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부천군 계남면에 속하였고 1973년 중동으로 변경되었다. 1988년 남구 중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에 원미구 중동으로 변경되었고, 같은 해 중동에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2동은 신도시 개발에 따라 생성된 동이기 때문에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고르게 분포하는 계획도시로 경찰서, 소방서 등 행정시설과 다수의 초‧중‧고 교육 시설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신중동역을 중심으로 중1동과 인접해 있어 생활권역을 공유하고 있다.
- 중3동(中3洞)
중동은 조선 시대에는 부평군 석천면에 속한 중리(中里) 지역이다. 중리라는 이름은 여러 마을 중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부천군 계남면에 속하였고 1973년 중동으로 변경되었다. 1988년 남구 중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중동으로 변경되었고, 1995년 중1동에서 중3동이 분동되었다. 중3동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밀집한 전형적인 주거도시로 주민센터, 세무서, 고용지원센터 등 주민들을 위한 각종 행정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특히 초등학교(중흥초, 옥산초), 중학교(부흥중, 중흥중), 고등학교(심원고, 중흥고)가 있고, 경기도 부천 교육지원청이 있어 교육 환경이 좋은 편이다. 신중동역을 중심으로 부천시청역과 춘의역 사이에 위치하며, 중1‧2‧4동과 약대동 및 원미동, 춘의동과 인접하고 있다.
- 중4동(中4洞)
중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중리(中里) 지역이다. 중리라는 이름은 여러 마을 중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부천군 계남면에 속하였고 1973년 중동으로 변경되었다. 1988년 남구 중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중동으로 변경되었다. 1995년 중1동에서 중3동이 분동되었고 1996년 중3동에서 중4동이 분동‧신설되었다. 중4동은 신도시 개발에 따라 신설된 동으로 중동 신도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중4동은 아파트 단지들과 학교시설들을 중심으로 부천체육관과 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부천시청역을 중심으로 신중동역과 상동역으로 분포하고 있는 상권 및 행정시설과 인접하여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
- 상동(上洞)
상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상리(上里) 지역이다. 이외에도 사래이, 사랑리, 웃말 등으로도 불렀다. 상리는 옛 석천면 지역 중 웃(윗)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거나 이곳이 주변 지역보다 높은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상동은 1973년 구지리와 합쳐지면서 송내‧상동이 되었다가 1985년 상동과 송내동으로 분동되었다. 1998년 중구 상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상동으로 변경되었다. 상동은 신‧구도심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송내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법원지원청과 검찰지청을 중심으로 법조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부천 사법기관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상1동(上1洞)
상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상리(上里) 지역이다. 이외에도 사래이, 사랑리, 웃말 등으로도 불렀다. 상리는 옛 석천면 지역 중 웃(윗)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거나 이곳이 주변 지역보다 높은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상동은 1973년 구지리와 합쳐지면서 송내‧상동이 되었다가 1985년 상동과 송내동으로 분동되었다. 1998년 중구 상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상동으로 변경되었다. 상1동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신도시 지역이며 각종 문화체육 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다. 송내역,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경인국도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 상2동(上2洞)
상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상리(上里) 지역이다. 이외에도 사래이, 사랑리, 웃말 등으로도 불렀다. 상리는 옛 석천면 지역 중 웃(윗)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거나 이곳이 주변 지역보다 높은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상동은 1973년 구지리와 합쳐지면서 송내‧상동이 되었다가 1985년 상동과 송내동으로 분동되었다. 1998년 중구 상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상동으로 변경되었다. 2003년 상동에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2동은 신도시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혼재해 있고 상업시설도 입지하고 있다. 상동호수공원, 시민의 강이 있는 친환경 녹색마을 조성 지역이다. 인천과 인접하며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송내IC, 부천소풍 터미널, 7호선 상동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 상3동(上3洞)
상동은 조선시대 부평군 석천면 상리(上里) 지역이다. 이외에도 사래이, 사랑리, 웃말 등으로도 불렀다. 상리는 옛 석천면 지역 중 웃(윗)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거나 이곳이 주변 지역보다 높은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상동은 1973년 구지리와 합쳐지면서 송내‧상동이 되었다가 1985년 상동과 송내동으로 분동되었다. 1998년 중구 상동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원미구 상동으로 변경되었다. 2001년 상동 신도시 개발로 중동 일부가 편입되었으며 2003년 상동에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3동은 공동주택, 단독주택, 상업지역이 고르게 분포한 전형적인 계획도시이다. 인천과 인접해있고 중동IC와 상동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